• 최종편집 2024-03-28(목)
 
[충청24시뉴스] 최창열 기자=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위치해 있는 돈암서원은 1634년 건립됐다.  
 
조선시대 예학의 종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장생은 송익필(1534~1599년)의 문하에서 예학을 전수받았고, 20세 무렵에는 율곡 이이(1536~1584년)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했다. 율곡의 학맥을 이은 사계 김장생의 학문은 훗날 아들 신독재 김집에게 계승됐고,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에게 전해져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는 기호학파를 형성했다.

돈암서원은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연구 및 인재를 양성 했다. 소장하는 문집과 예서 책판의 간행을 통해 호서지역 사림들에게 지식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교육의 장으로 잘 활용 되고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며 오늘날 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김장생이 1631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학덕을 추모하고 학문을 잇기 위해 후학들이 건립했다. 1660년 ‘돈암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원래 현재의 위치보다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하임리 숲말에 있었다. 이곳은 연산천에 가까운 저지대라 수해를 피하기 위해 1880년에 현 위치로 옮겨 세워졌다. 돈암이라는 명칭은 처음에 세워졌던 숲말 산기슭에 ‘돈암’이라 부르는 큰 돼지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돈암의 ‘돈’은 ‘둔(遯)자로 세상을 피해 숨어 산다’는 은둔, 혹은 둔세를 뜻한다. 김장생이 젊었을 때 과거에 응하지 않고 인조반정 이후에는 국왕의 부름도 사양하고 고향인 이곳에 은둔해 학문과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면서 산림으로 살아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돈암서원은 거의 평지에 전학후묘의 형태로 구성돼 있다.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입구에 산앙루라는 누문의 유식공간이 있다. 입덕문을 지나면 전면에 강학공간으로 양성당이 보이고 그 앞 좌우에 동·서재가 세워져 있다. 양성당 앞에 특이하게 원정비가 세워져 있는데 돈암서원의 건립 내력과 김장생·김집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연산현돈암서원비기(蓮山縣遯巖書院碑記)>로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양성당 좌측으로 정회당과 장판각이 있다. 정회당(靜會堂)은 김장생의 아버지 황강 김계휘(1526~1582년)가 강학하던 건물이다. 정회는 ‘고요하게 몸소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성당 뒤로 숭례사(崇禮祠)라고 이름한 사당이 있다. 사당에는 중앙에 김장생이 주 제향돼 있고 양옆에 김집·송준길·송시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다.

원래 돈암서원의 옛터에서는 응도당(凝道堂)이 강당이었으나 옮겨 세우는 과정에서 양성당이 먼저 정면에 강당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하여 나중에 이건된 응도당이 양성당의 동남쪽으로 비켜 배치됐다. 돈암서원을 1880년 현 위치로 옮겨 세울 때 모든 건물을 다 옮기지 못해 사당과 내삼문을 포함한 사우 구역과 양성당만을 우선 옮겨 세운 것이다. 응도당은 규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 지체되다가 1971년 옮겨 세워졌다.

보물 제1569호로 지정된 응도당은 한국 서원의 강당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오래된 건물이자 다른 서원 건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구조를 보여준다. 응도는 ‘도(道)가 머문다’는 뜻이다.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내부의 공포와 화반, 대공 등의 조각은 화려하고 예술적으로 아름다워 하나하나가 품격 있는 전통 한옥 건축의 백미다. 응도당은 사계 김장생이 <가례집람>에서 정립한 서원 건립 양식을 실제로 적용한 건물이다.

한편 장판각에는 김장생의 예학 관련 저술인 <상례비요> <가례집람> <의례문해속> 등의 서적들이 현재 목판본과 함께 소장돼 있다.
지난해 7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콩그레센터에서 유네스코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 공동주최해 열린 제43차 셰계유산위원회가 돈암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결정하는 쾌거를 거뒀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배경은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 돈암서원을 비롯해 9개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한국의 정신적·문화적 유산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려 고품격 문화국가로서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해 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은 조선 시대 사회 전반에 널리 보편화 되었던 성리학(性理學 :중국 남송(南宋)의 주희(朱熹:朱子)가 집성(集成)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공헌한 점을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다.
 
특히 세계유산과 각 구성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보존관리계획 등도 요건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고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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