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파키스탄을 도와야 하는가
2011/08/10 16:4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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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파키스탄 홍수피해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다니엘 툴 유니세프 남아시아지역사무소 대표가 CNN을 통해 전한 내용입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늘 당장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세계에 전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근해에서 유입된 거대한 물줄기가 온 땅을 뒤덮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비슷한 재앙이 떠올랐고, 그 때와는 반응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피해 정도나 주민들이 겪는 고통도 그 때와 똑같은데 이번에는 홍수 피해자들을 돕고자 하는 절박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물에 잠긴 도시뿐이다.  키 큰 나무에 근근이 달린 가지들만이 어쩌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봇대도 물 아래 잠겨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피신해 있을까? 수면 위로 겨우 떠올라 있는 몇몇 자투리땅에 삼삼오오 고립되어 있는 가족들이 보인다. 순식간에 물이 밀려들어와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바람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황급히 피신했을 것이다.  

파키스탄 땅 5분의 1이 아직도 물 속에 잠겨 있다. 내일 아침 눈을 떴는데 영국 전역이, 또는 플로리다주가 완전히 수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라진 것은 비단 농작물과 시장, 도로, 학교와 마을뿐이 아니다. 대대손손 지키고 살아온 집도 씻겨 내려갔다. 이제 이재민들은 고통 속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십 년간 구호활동에 매진해왔지만, 이번 홍수사태만큼 처참하고 암담한 현실은 본 적이 없다. 

이쯤에서 나는 몇 년 전 일어난 쓰나미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쓰나미는 이번 홍수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 파괴력은 비슷했었다. 당시 쓰나미가 아시아를 강타한 직후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엄청난 재해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후원금은 올바르게 사용될까? 후원금이 옳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제대로 쓰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엔을 비롯한 많은 인도주의적 단체들이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제대로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을까?  지구촌의 여론은 뜨겁게 들끓었다. 

다행히도 이러한 의문들은 쓰나미가 훑고 간 처참한 현장이 생방송 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모두 사라졌다. 엄청난 물결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후원금과 인력 자원이 넘쳐났다. 

오늘날, 쓰나미가 관통한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당사국 정부와 인도주의적 단체들은 쓰나미 이전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은 ‘자연 친화적인 하수처리공장’부터 ‘어린이에게 친근한 학교’에 이르기까지 희망의 기운이 가득하다.

파키스탄도 분명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홍수사태를 지켜보는 주변국들의 반응은 통탄스러울 만큼 잠잠하다. 이번 홍수의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남아있는 위협이 너무나 크다. 정부는 약 2천만 명의 파키스탄 주민이 피해를 입었으며, 이 중 8백만 명 이상이 18세 미만 어린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4백만 명의 어린이가 가장 큰 위험 앞에 높여 있다. 이들은 홍역과 소아마비를 비롯해 치명적인 수인성질병인 세균성 이질과 설사, 콜레라에 쉽게 감염되기 때문이다.  

신드마을의 보건진료소를 방문해서 나는 홍수 발생 이전보다 설사병 환자가 4배 이상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사와 탈수증은 어린이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죽음의 질병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는 현장에서 엄마들과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한 엄마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파리떼 속에서 무려 다섯 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홍수를 피해 도망치면서 몸에 걸친 옷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는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내 얼굴과 몸에서도 땀이 비오 듯 흘렀다. 

그녀처럼 막막한 처지에 놓인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이 곳은 안전한 식수와 음식이 제공되는 비교적 좋은 환경의 이재민수용소지만 그녀는 이미 심한 설사로 고생하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몸이 아픈 상태이다. 그녀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천막은 단지 비바람만 피하게 해줄 뿐이다. 그녀와 아이들은 이 더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비가 또 내린다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홍수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은 5백만 명에 육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외부감염, 피부병 그리고 호흡기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물이 조금씩 빠져나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이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실 물도, 식료품을 살 상점도, 가축들도 없다. 남은 것은 공허함과 상실감뿐이다. 

난민촌 생활 역시 불안정하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는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니세프를 비롯한 인도주의 구호단체들은 구호활동을 전담할 현지인력을 가지고 있고, 과거 긴급구호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재해가 닥쳤을 때 신속하게 긴급모금활동을 진행해 깨끗한 식수공급과 예방접종, 의약품 지원, 보건진료, 식량과 생활용품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현재 파키스탄을 위한 기금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유니세프와 협력단체들은 매일 2백만 명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있으며, 약 80만 명의 어린이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수많은 이재민들이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진이 너무 부족하다. 당당 구조를 위한 헬리콥터 40대가 필요하다. 이재민을 위한 비누와 양동이가 필요하지만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이다. 국가재난발생 시 필요한 모든 지원금품이 조달되어야 한다.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적십자사 등은 구호가 절실한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는 분야에 있어 오랫동안 신뢰와 경험을 쌓아온 단체들이다. 특히 긴급사태 발생 시에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혜택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파키스탄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모습에서는 일종의 존엄성이 느껴진다.  라마단  때가 되면 그들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한 모금의 물조차 마시지 않고 모두 금식을 한다. 

나는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지난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때 볼 수 있었다. 구호활동가들은 쉬지 않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들에게 음식과 깨끗한 물, 의약품, 천막 등을 나누어 주었으며, 현지 주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었다(형제와 같은 ‘biraderi나 같은 종족 간에는 반드시 서로를 도와야 된다는 믿음은 파키스탄의 오랜 전통이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앞다투어 인명구조에 나섰고, 의료진들은 낮에는 이재민 환자들의 다친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저녁에는 수 마일 떨어진 마른 땅에서 식량을 구해와 함께 나누어 주었다.

이처럼 이들은 서로를 존중해 무엇이든 나누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구촌사람들 역시 이러한 인류애를 끊임없이 실천해왔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을 기억하는가? 세계적인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아이티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가진 나라니까 이 정도의 어려움은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기대를 하고 있는가? 

하지만 이번 대참사는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국경을 넘어선 재앙이다. 지금 입은 피해의 영향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지리적으로 이 곳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아래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 지역적인 특성도 이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비슷해 매우 불안정하다. 이렇게 약하고 불안정한 지형은 자연재해 앞에서 매우 취약하다. 

우리 모두 지구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인류이자 형제이다. 파키스탄 인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나누듯이 우리도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금 손을 내밀자.  오늘이 아니면 너무 늦다. 

지금 수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 최창열 t58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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