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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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부 특임교수 기고] = ‘나치의 병사들’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2차 대전 종료 후 연합군 측 포로수용소에서 수 천 명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포로들의 대화를 도청한 내용을 소개한다.

이들 군인들은 철도에 폭탄을 투하해야 하는데 주택가 한복판에 폭탄을 투하하고도 감흥을 느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공중에서 기관단총으로 전쟁과 관계없는 민간인과 부녀자,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 총알을 난사하며 쾌락을 느끼기까지 한다. 또, 거리에 지나가는 부녀자와 어린 학생들을 윤간하고 죽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서로 경쟁하듯 자랑삼아 자신들의 무용담을 이야기 한다.

전쟁에 투입되기 전 이들의 직업은 평범한 농부, 목수, 교사, 전기공, 샐러리맨, 종교인 등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 이들이 이런 잔인무도한 짓을 범하고도 왜 쾌락을 느끼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의문들을 ‘프레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간다.
프레임이란 하나의 틀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입되면 ‘생각처리방식을 공식화한 것, 즉 어떤 인식의 틀’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살인, 강간, 폭력, 파괴 등을 허용하고 심지어 찬양하기까지 하는 저급한 전쟁프레임 속에서 전쟁 전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군인들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영웅시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전쟁프레임이란 틀 속에서는 지식인이든 종교인이든 인종주의자이든 개인적 편차는 거의 없다는 점을 냉정하게 이야기 한다.

최근 사회지도층들의 성 비위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평소 헌신적인 봉사 등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이들이라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일탈의 정도를 한참 벗어난 이들의 성 관련 범죄는 방대한 예산배분권, 폭넓은 재량권 행사, 합법적인 강제수단의 보유, 높은 사회적 지위 등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강한 권력을 행사하다보면 직장 내 인간관계를 동료관계보다는 신분적 상하관계로, 수평적 평등관계보다는 수직적 상하관계로 인식하기 쉽다.

조직 내 잔존하는 이러한 권위주의적 행태, 종적 서열관계에 대한 지향성, 관직 사유화 관점 등을 과감히 떨쳐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권력형 성 비위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저급한 전쟁프레임에 의한 악한 영향과 관료주의 내에 은연중에 형성된 저차원의 성인지 프레임의 악영향이 만들어 내는 폐해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부분에서 같다.

아무리 고등교육을 받고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지극히 보편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릇된 프레임에 갇히면 악을 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폭주기관차처럼 악으로 치닫게 되는 그릇된 프레임의 치명적 폐해가 야기된다.

그릇된 전쟁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그릇된 성인지 프레임은 양심이나 논리적 사고를 마비시켜 자신도 망가트리고 타인도 망가트려 종국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성 범죄의 경우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기는 만큼 그 대가 또한 엄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공고히 자리매김해야 되풀이되는 성 범죄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다.

조직 내 성추행·성희롱 전수조사나 TF 팀 구성을 통한 논의, 간담회 개최, 성범죄 신고앱 구축, 성범죄 특별신고기간 운영 등도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교육에서 ‘성(性)’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을 높임과 동시에 권력형 성 범죄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는 것을 꾸준히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전히 ‘성차별’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을 뜯어고치는 일이라 쉽진 않겠지만 ‘성범죄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는 프레임이 빠르게 확산되어 상식으로 통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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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부 특임교수 기고] 권력형 성 비위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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